분류 전체보기 13

옥수스 강변의 죽음

무장도 허술한 데다가 귀중품을 싣고, 게다가 금을 운반한 다는 소문까지 도는 카라반을 끌고 아프가니스탄의 중심부를 통과하는 일은 좋은 시절에도 위험한 일이었다. 하물며 나라가무 정부 상태에 빠져 내전이 임박한 상황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은 대단 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으며, 어떻게 보면 무모한 일이 었다. 그러나 무어크로프트 일행은 지금 대담하게 그 일을 하려고 했다. 몸과 물품 이 모두 말짱하게 옥수스 강변에 도착할 가능성은 적었다. 게다가 그 들보다 먼저 퍼진 황당한 소문 몇 가지는 그들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 는데 전혀 보탬이 되지 않았다. 한 가지 소문은 그들이 사실은 영국 침략군의 비밀 전위이며, 아프 가니스탄을 합병하기 전에 정찰을 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오래지 을 어크로프트가 바로 그렇게 해야 ..

카테고리 없음 2026.01.19

이상한 개 두 마리

허말라야 고개들 북쪽, 폭풍이 몰아치는 티베트 고원에는 성산 카일라스가 우뚝 서 있다. 불교도와 힌두교도는 신비와 미신과 영원한 눈으로 둘러싸인 이 6700미터 높이의 봉우리 가만유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 신앙에 헌신하는 사 람들은 기억할 수 없는 오래전 옛날부터 이 외딴 산에 가려고 목숨을 걸었다. 이 산을 한 번 돌고 오면 평생의 죄를 씻을 수 있다는 이야기 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인들에게 카일라스 주변의 황량한 풍경은 종교적인 함축물이 풍부한 곳이다. 어떤 사람들은 붓다의 발자국이 있다는 이야기도 한다. 또 목욕을 할 만한 거륙한 호수도 있고, 찾아 보아야 할 성자들의 무덤도 있으며,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할 성스티간 동굴도 있고, 지친 여행자들이 쉴 수 있는 수도원도 있다. 티베..

카테고리 없음 2026.01.18

부하라 번스의 등장

"안타깝구나. 신드는 이제 사라졌다. 영국인이 우리를 정복 하는 길인 강을 보고 말았구나." 한 원주민 성자는 알렉산더 번스 중위 일행이 인더스 강을 따라 올라가는 것을 보며 그렇게 말했 다고 한다. 한 병사도 똑같은 두려움을 안고 번스에게 말했다. "악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신이 우리 나라를 보고 말았군요." 찰스 메트캐프 경이 경고했듯이 이 원정의 진짜 목적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의심 을 하는 아미르들은 처음에는 이상한 화물을 실은 동인도회사 선박 사신의 영토를 가로지르는 것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란지트가로막으면 심각한 결과가 생길 것이라는 협박에 기가싱의 선물을 죽고 또 자신들도 선물을 받자 마음이 약해져 , 마침내 마지못해 번스 일행의 전진을 허용했다. 아미르들은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고 ..

카테고리 없음 2026.01.18

관계의 악화

러시아와 페르시아가 캅카스에서 협정을 맺었기 때문에 코 사크 부대의 전진은 멈추었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탐욕스러운 눈길을 중앙아시 아로 돌리게 되었다. 그러나 협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차르와 샤 모두 1813년 영국의 중재로 체결한 굴리스탄 조약 을 다음 판에 다시 만니기 전에 힘을 기르기 위한 일시적 방편으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샤는 승리한 러시아에게 넘겨준 실지를 회복하고 싶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적당한 때가 오면 페르시아와 접한 남 국경 너머로 밀고 내려가 그대로 눌러앉을 생각이었다. 결국 무어 크로프트가 죽은 지 일 년이 지나지 않아 . 두 이웃은 다시 전쟁에 돌 김했다. 페르시아가 러시아군에 게 짓밝히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영국은 당황했다. 전쟁이 벌어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조약의 문구 를..

카테고리 없음 2026.01.17

러시아의 첫번째 선수

1819년 여름 그루지야의 수도 티플리스(당시 캅카스의 러시 아군 사령부가 있었다), 새로 지은 러시아정교 예배당의 조용한 한쪽 구석에서 제복을 입은 한 젊은 장교가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 장교는 그날 거기에 있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창조주에 게 물어볼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스물네 살의 하일 니콜리라예비치 무라비요프 대위는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살 행위라고 생각하는 임무를 수행하러 떠날 참이었다. 예르몰로프 장군의 명령을 받아 투르크멘 부족민으로 변장을 하고, 1717년의 불운한 원정대가 갔던 그 위험한 길을 따라 동쪽으로 13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히바로 가려는 것이었다. 법을 아랑곳하지 않는 적대적인 투르크멘 사람들에게 살해당하거나 잡혀서 노예로 팔리지 않고 황량한 카라쿱 사막을 건..

카테고리 없음 2026.01.17

키니어의 침략 경로 연구가 보여주는 잠재력

침략군이 어떤 길을 택하든 간에 결국 모두 아프가니스탄을 통과해야 했다. 심지어 러시아도 캅카스의 새로운 요새로부터 출발하든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인도에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첫 번째 경우라면 러시아는 페르시아 전체를 행군하여 관통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통제하는 카스피 해를 이용하여 건너편 동쪽 해안으로 이동한 다음 옥수스 강까지 행군할 수 있다. 이 강을 이용하면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발흐까지 배를 타고 갈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을 건넌 후에는 카이베르 고개를 통해 인도에 접근할 수 있다. 이것은 히바 원정대의 대량 학살로 끝난 꿈이긴 하지만 표트르 대제가 인도의 무굴 통치자들과 접촉하기 위해 사용하려 했던 길이기도 했다. 키니어는 이 길의 무시무시한 난관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

카테고리 없음 2026.01.13

모든 길은 인도를 향하여: 키니어의 계획

인도의 눈부신 부는 늘 탐욕스러운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영국인들이 도착하기 오래 전부터 인도의 통치자들은 늘 침략의 위협을 느끼며 살았다. 그런 침략은 동인도회사가 유럽의 경쟁자들을 몰아내기 약 3000년 전 아리아인이 북서쪽 고개들을 넘어올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파도처럼 연속적으로 밀려와 원주민을 남쪽으로 밀어냈다. 그 뒤로 크고 작은 침략이 여러 차례 뒤따랐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는 기원전 500년 경에 침입했고 알렉산드로스 대제는 그로부터 200년 뒤에 침입했다. 그러나 둘 다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997년부터 1026년 사이에는 위대한 이슬람 정복자 가즈니의 마무드가 인도 북부를 무려 15번이나 습격하여 그때 가져간 엄청난 약탈물로 자신의 수도를 장식했다. 구르의 무함마드는 가즈니를..

카테고리 없음 2026.01.12

코틀리아렙스키에게 참담한 패배를 맛본 페르시아

러시아가 캅카스 땅을 콘스탄티노플, 더 나아가 테헤란으로 진격하기 위한 도약대로 사용할 것이라고 두려워한 사람은 윌슨만이 아니었다. 터키와 페르시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입하기 직전인 1811년 여름, 그들은 오랜 경쟁 관계를 청산하고 함께 이교도 침입자와 싸운다는 데 합의를 보았다. 알렉산드르가 국내의 필요 때문에 캅카스에 있던 군대를 철수시키자 전망은 밝아 보였다. 남은 러시아 군대는 사상자를 많이 내기 시작했다. 어떤 전투에서는 페르시아군이 러시아 연대 전체의 항복을 받아내고 깃발까지 빼앗기도 했다. 러시아군에게는 전례가 없는 모욕이었다. 한 논평자는 이렇게 말했다. "페르시아 궁정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갈 것이다. 이제 러시아는 무적이 아니..

카테고리 없음 2026.01.11

나폴레옹에 맞선 러시아 도깨비, 영국의 장군 로버트 윌슨

1812년 여름 나폴레옹의 군대가 파멸을 향해 행군하면서 통과하였던 발트 해의 도시 빌뉴스에는 지금도 명판 두 개가 붙은 소막한 기념비가 서 있다. 이 둘을 합치면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의 전모를 알 수 있다. 모스크바를 향하고 있는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812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40만 명을 이끌고 이 길을 지나갔다." 그 반대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812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9000명을 이끌고 이 길을 지나갔다." 영국은 나폴레옹의 대군단이 뿔뿔이 흩어져 러시아의 눈밭을 헤치며 되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못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의 승리는 확실해 보였다. 모스크바가 나폴레옹의 군대에게 함락되어 불타고..

카테고리 없음 2026.01.10

그레이트 게임을 향한 포팅어의 험난한 여정

사막에는 아무런 이정표도 없었기 때문에 안내자들은 먼 산맥을 보고 길을 잡아나갔다. 그러다 한 번은 낮의 끔찍한 더위를 피해 한밤 중에 길을 떠나기로 했는데 금세 길을 잃고 말았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포팅어는 나침반 하나를 몰래 감추고 있었다. 그는 호위대 모르게 나침반을 꺼내 억지로 유리를 뜯어낸 뒤에 엄지손가락으로 바늘을 만져보고 가야할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해가 떠서 그 방향이 정확하다는 것이 드러나자 호위대는 깜짝 놀랐다. 그들은 며칠 동안이나 그것이 그의 지혜의 놀라운 증거라고 이야기했다. 포팅어는 보통 지도를 그리면서 방향을 잡을 때만 몰래 나침반을 사용했다. 그러나 한두 번은 도저히 눈에 띄지 않게 감출 수가 없었다. 그때는 그것이 키블라 누마, 즉, 메카..

카테고리 없음 2026.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