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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악화

러시아와 페르시아가 캅카스에서 협정을 맺었기 때문에 코 사크 부대의 전진은 멈추었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탐욕스러운 눈길을 중앙아시 아로 돌리게 되었다. 그러나 협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차르와 샤 모두 1813년 영국의 중재로 체결한 굴리스탄 조약 을 다음 판에 다시 만니기 전에 힘을 기르기 위한 일시적 방편으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샤는 승리한 러시아에게 넘겨준 실지를 회복하고 싶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적당한 때가 오면 페르시아와 접한 남 국경 너머로 밀고 내려가 그대로 눌러앉을 생각이었다. 결국 무어 크로프트가 죽은 지 일 년이 지나지 않아 . 두 이웃은 다시 전쟁에 돌 김했다. 페르시아가 러시아군에 게 짓밝히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영국은 당황했다. 전쟁이 벌어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조약의 문구 를..

카테고리 없음 2026.01.17

러시아의 첫번째 선수

1819년 여름 그루지야의 수도 티플리스(당시 캅카스의 러시 아군 사령부가 있었다), 새로 지은 러시아정교 예배당의 조용한 한쪽 구석에서 제복을 입은 한 젊은 장교가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 장교는 그날 거기에 있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창조주에 게 물어볼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스물네 살의 하일 니콜리라예비치 무라비요프 대위는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살 행위라고 생각하는 임무를 수행하러 떠날 참이었다. 예르몰로프 장군의 명령을 받아 투르크멘 부족민으로 변장을 하고, 1717년의 불운한 원정대가 갔던 그 위험한 길을 따라 동쪽으로 13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히바로 가려는 것이었다. 법을 아랑곳하지 않는 적대적인 투르크멘 사람들에게 살해당하거나 잡혀서 노예로 팔리지 않고 황량한 카라쿱 사막을 건..

카테고리 없음 2026.01.17

키니어의 침략 경로 연구가 보여주는 잠재력

침략군이 어떤 길을 택하든 간에 결국 모두 아프가니스탄을 통과해야 했다. 심지어 러시아도 캅카스의 새로운 요새로부터 출발하든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인도에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첫 번째 경우라면 러시아는 페르시아 전체를 행군하여 관통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통제하는 카스피 해를 이용하여 건너편 동쪽 해안으로 이동한 다음 옥수스 강까지 행군할 수 있다. 이 강을 이용하면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발흐까지 배를 타고 갈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을 건넌 후에는 카이베르 고개를 통해 인도에 접근할 수 있다. 이것은 히바 원정대의 대량 학살로 끝난 꿈이긴 하지만 표트르 대제가 인도의 무굴 통치자들과 접촉하기 위해 사용하려 했던 길이기도 했다. 키니어는 이 길의 무시무시한 난관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

카테고리 없음 2026.01.13